기업 총수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불필요한 ‘과잉’
정작 필요한 것, 생활에 관계돼 있는 이웃들에 ‘시선’
2024년 재계 신년인사회가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 지하에서 2일 오전 열렸다. 기업 총수들이 등장하는 자리에 대한민국 주요 경제계에 종사하는 이들, 그리고 매체 기자들, 홍보라인 관계자들이 모두 모였다. 직업이 기자인지라, 나도 자리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사전등록을 하지 못한 관계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대한상의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기자 권한은 대통령실 쪽에서 관할한다고 해서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전일 상의 홈페이지에 등록을 하려했으나 공지가 사라졌기에 나름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취재가 허용되지 얺았다.
섭섭함을 등에 묻힌 채 여의도 한강 나룻터에 가 라면 하나로 허기를 달랬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한 아주머니께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고 계시는 장면을 봤다. 아마도 믿을 수 있는 게 인터넷에 올려진 기사인 듯 싶다. 기자라,.. 카페나 사람 많은 곳에서 전화취재를 하게 되면, 이를 듣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분위기를 자주 느끼곤 한다. 기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꺼리고, 눈치를 볼까. ’기레기~’ 나도 공감한다. 사실을 보도한 기자나 기사들은 많지만, 필요한 이야기는 별로 보질 못했다. (내가 상대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기자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인 줄 알면서, 사회에서는 기자들에게 꽤나 대우를 해주는 가보다. 본인들의 어려운 생활이나 아픔들을 지적해 주는 기사들, 나 별로 못 봤다. 집단화로 묶어 보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대우를 받는다.
이날 기관에 모인 기업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회장이라고 하면, 꽤나 사람들이 존중해 주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이 본인(아니 우리로 좁히자)에게 무슨 도움을 줬나? 그들은 우리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명확한 장사꾼일 뿐이다. 쉽게 말해, 그들의 급여는 우리가 챙겨주는 셈이다. 대우는 그들이 우리에게 해 줄 것이지. 우리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나라에 세금이 쌓이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월급이 없 듯. 기업 총수라는 자리 역시 우리의 지갑이 열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고마움을 표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바로 우리다. 당연한 소리 아닌가?. (이쯤에서 나 역시 과거 기자생활하면서 기업총수들 보고 마냥 ‘우와~’한 적이 많았다. 희소성?. 아니면 뉴스에서 봐서? 글쎄다. 왜 그랬을까 싶다.) 그냥 똑같다. 다를 게 전혀 없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들?
2024년, 용의 해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등 안 좋은 통계들이 난무하다. 세계 어느 민족 못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좋은 자원과 에너지들이 곳곳에 필요 이상의 과몰입으로, 감정노동으로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 못 하든 행동을 초래하는 가장 큰 동기는 생각, 그리고 이것에 영향을 받아 생기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를 자극하는 것은 당연히 신경 쪽이다. 그러니 쓸모없는 곳에 우리의 소중한 신경을 분산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돈이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똑똑하다고, 가치 있는 무엇이 모두 사회 통념이 인정하는 바 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것들을 가진 누군가를 존중하거나, 우리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줄 필요는 없다.
모두 우리가 번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임을,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정도로 ‘그냥 그렇다’ 곧, 나와 크게 관계없는 이들은 스쳐 지나가자. 그보다 진짜 나의 신경과 호감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바로 접점이다. 가족, 친구, 지인, 직장 동료,, 동네 소상공인들. 알바나 직원, 택배나 음식을 배송해 주는 이들.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쓸모없이 분산돼 있는 신경들을 돌려 전해주면 어떨까? 혜택은 당신에게 돌아온다. 가는말이 고우면 반드시 오는 말도 곱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 더 건강해지고, 사회도 좀더 밝아지고 살만 해 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