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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GRIT] 자살과 스트레스 1위 한국, 우울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서평: GRIT] 자살과 스트레스 1위 한국, 우울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

    3년 전 우울증 약을 끊었다. GRIT은 약을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내 인생의 주옥같은 책이다. 한 가지 인상적인 실험이 나오는 대목을 뽑아 경험한 그대로를 적어본다. 우울증 자체보다 의존이라는 부작용에 20년 이상의 젊은 날을 허우적댔다. 제약회사와 혈세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 대학종합병원 교수들은 5분의 상담도 지나지 않아,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잘 모르겠다’는 어눌한 환자의 한마디만 듣고, 차트대로 복사-붙여넣기 처방을 반복했고, 그렇게 인생은 망가졌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건 전제다.

    주로 우울증 약은 호르몬 조절이 목적이다. 조절 차원에서 균형을 맞춘다면 좋겠지만, 동일한 스트레스성 환경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의 상황은 이 작용이 강화되기 딱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강력한 부작용인 의존성을 몸이 익힐 수 있다. 이 과정을 십수년 반복했다.

    ’그릿’에서는 개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이 소개된다. 전기충격을 가한 뒤 적절히 움직였을 때(통제) 멈추게 된다는 학습을 한 개와 전기충격만 가해진 개 두 가지 조건을 설정해 놓는다. 다음 날 전기충격을 가했을 때 담장을 넘는 개는 충격을 통제했던 무리였고, 그렇지 못한 개들의 3분의 2가 웅크리고 실험이 끝날 때까지 낑낑대기만 했다. 이에 대해 무력감을 낳는 요인이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한 실험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통이라고.​이 실험은 1964년 행해졌는데, 이후로 10년 동안 진행한 추가 실험들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식욕과 신체 활동의 변화, 불면증, 집중력 저하 같은 우울증 증상을 초래한다는 결과를 확실히 보여줬다고 한다. 무기력은 분명 학습된다. ​모두가 알겠지만,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우울증은 삶의 문제,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대인관계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같은 사건들이 우울증에 작용한다. 비관적인 사고와 낮은 자존감, 무엇보다 문제 해결에 실패했을 때 오는 통제감의 상실 무기력. 거기서 나오는 무력감. 감정이 반복되면 강화되고, 늪에 빠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스트레스 지수 1위, 자살률 1위 국가이다.’그릿’에는 우울증에 대한 해결책이 분명 담겨있다. 골자는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은 객관적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학습된 무력감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이면엔 ‘학습된 낙관주의’를 설명한다.​

    나쁜 일을 맞닥뜨리는 데는 누구나(낙관론자나 비관론자) 마찬가지다. 차이는 그 일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었다. 낙관론자는 으레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일시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찾는다. 특수한 원인으로 ‘해결 가능성’이 있어 문제 극복할 동기를 부여한다.

    그릿의 전형들은 실망스러운 일들을 회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일이 생기든 거기서 배울 점을 찾고, 계속 밀고 나간다는 것. 이 부분에서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아론 벡이라는 심리학자는 과거 아동기 갈등이 양산한 무의식이 정신질환의 원인이라는 기존 프로이트 학파의 관념을 과감히 거부했다.

    방법은 대화기술이다. 부정적인 자아와의 대화에 유의하면 부적응적 행동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분명 이 기술은 고통스러운 반복과 학습을 통해 가능하다. ‘No pain, no gain’은 자명한 진리, 그 확실한 방법론을 ‘그릿’이라 책은 설명하고 있다. 흔히 익히는 다른 기술들처럼 우리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낙관론자처럼 해석하고 반응하도록 연습할 수 있으며, 그 효과가 항우울제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입증됐다는 내용이다.

    학습된 낙관주의라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태도를 말한다. 태도의 근원은 생각이며, 그 생각이 증상 치료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 결국 ‘그릿’, 마음이 열쇠이며 방법이다. 약은 보조제일 뿐이며, 그렇게 생각해야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릿의 전형들과의 면담, 50년 동안 축적된 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전부 동일한 상식적 결론을 가리켰다.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계속 찾는다면 마침내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반해 방법이 없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포기한다면 단언컨대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희망을 품어라. 그릿을 좌우하는 희망은 우리의 노력이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 내일은 나아질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그릿이 말하는) 희망은 행운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다시 일어서려는 자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감정이나 느낌을 중시하는 태도는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릿 즉 의지가 담긴 마음(心)에 모든 것이 달렸다. 혹시 누군가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감정이 상해 있나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술을 드시나요? 뒷담화로 누군가에게 전달해서 풀고 계시나요? 모두 감정 강화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깊어지면 병이 됩니다. 책의 표지에서 말합니다. 당신에겐 ‘그릿’이 있는가? 올바른 ‘마음’이 있는가?

  • ‘분노’가 거세된 한국, 그 원인은 어쩌면 지식인과 언론?

    ‘분노’가 거세된 한국, 그 원인은 어쩌면 지식인과 언론?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한국 지식인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 꼬집은 책이다. 2000년에 발간된 저서이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뭣이 바뀌었을까? 문명은 진화해도 인간은 어리석음을 반복한다고, 현재 한국사회 역시 이면에는 같은 그림자가 짙다.

    분노가 건강에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저자도 밝혔지만, 옳은 생각을 지키기 위한 분노는 자신에게 굉장히 이롭다. 물론 조직에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다. 밥벌이와 상관이 있을 테니깐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인간에게 심하게 농축돼 쌓이는 인지부조화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욱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사실.

    강 교수는 2000년대 당시 한국인들이 분노를 잃은 까닭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추가로 기자의 생각을 덧붙여본다.

    첫 번째 원죄의식. 아주 쓸모없는 인식이다. 기독교가 강조하는 죄의식과 일맥상통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비판할라치면 ‘넌 군사독재시절 뭐했나?’, ‘침묵하다가 세상 좋아지니 설치냐?; 다시 말해 그 말할 자격이 있냐고 누군가 물을 것만 같은 무의식의 발로. 원죄가 존재한다고 무엇을 해도 죄가 스며들어있다고 ‘정죄’ 를 기본으로 깔고 진리를 쫓는 이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뒤로는 헌금이라는 밥그릇을 채우려는 교회목사들과 같은 논리다. 실제 사회 구성원 누구도 자신에게 ‘설치냐?’는 등의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 그걸 누가 무의식에 심어 놓았는가는 한번 생각해 볼 일.

    두 번째 공범의식. 이 사회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힘으로 쥐고 있다. 그들에게 자원이 흐르는 줄 알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두머리가 ‘돼지’라고 조직 구성원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까 봐 주변에서 제기하는 옳은 소리에도 의례 눈치를 준다. 냉소주의 ‘너나 해라’;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내 몸 부재하기도 힘들다는 태도. 공적인 분노 따위는 사치 스러우니까 너나 잘 해보라는 것. 내 밥그릇 지키기도 힘든 세상에서 옳은 일에는 에너지 보태기 싫다는 심보. 사회가 연결됐다는 기본 전제조차 이해 못 하는’고립’된 인간상의 발현이다. 고립은 심한 스트레스를 주며, 심하면 우울증 나아가 치매의 직원이라는 사실을.

    넷째는 ‘보신주의’ 다.주로 지식인에게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 비판을 무난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실명 비판은 절대 금기다. 추상적으로 싸잡아 두루뭉술하게 말이다. 실명비판은 천박하고 상스럽다고 해야 동시에 자신의 지적수준이 세련돼지나보다. 비판은 명확하고, 정조준해야 효과가 있다. 화살을 왜 쏘는가? 10점 만점에 10점이 목표 아닌가? 기업을 비판하면 브랜드를 공개해야 하듯, 사람을 비판하려거든 당연히 이름을 공개해야 하는 것. 그게 아니면 뜨끈하게 보신이나 하는 게 낫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저자는 이같이 분노 못 하는 한국인들의 행태가 자연스럽게 문화로 정착돼 버렸다고 말한다. 시민단체의 ‘무늬만 분노 행태도 꼬집는다’. 그들은 집단으로 행한다. 이런 분노는 ‘전략적이다.’ 집단의 이익이 걸려있기에 언론의 눈치를 본다. 이들은 “내가 중심이 되겠다”고 한다. 힘을 쥐어주면 같은 발상이 반복된다. 그래서 힘이 없다. 핵심은 한국 지식인이다.

    강 교수는 이들의 탐욕스러운 ‘내 이름 팔기’라는 매명주의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지성계에서 대표되고 있는 좌파들에 대한 지적. 이들은 비판으로 얻은 명성을 자신들의 입신 출세를 위해 사용한다. 명쾌하게 네이밍된다. ‘거세된 진보’

    상징과 장식으로 전락한 진보. 불필요한 갈등과 투쟁으로 비효율성과 비생산성만 양산한다. ‘천민자본주의라’는 푸줏간에 걸린 썩은 고기들.

    지식인, 소위 엘리트라는 것은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하는 인간들 뿐이다. 자기 집단을 위해, 아니 자신을 위해 가진 지식을 왜곡시키다 보니 결국 높아지려는 욕망으로 바뀌어버렸고, 상대적으로 다른 이를 아래로 떨어뜨린 것. 인간이 만들 것 중에 원래부터 존귀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역설한다.

    집단주의와 파시즘. 또 달리 설명하자면 인간이 가진 욕망 중 큰 것 하나가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인데 동시에 타인을 매도하려는 죄악까지 탑재한다.

    무엇보다 언론이 사회적 감시와 견제의 그물에서 벗어나 있다는 문제제기를 강력하게 펼친다. 우리 언론에는 수많은 성역과 금기가 있다. 이를 깨기에는, 상당히 피곤하다. 동시에 자기검열이 들어간다. 이어지는 무사안일주의, 신문사 상호 간 비판은 묵시적으로 금기시돼 있다. ’그 나물에 그 밥’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네 번째 힘은 ‘언론’이다. 앞 세 가지를 감시해야 할 위치에 있는 역할자들이 상당히 아프다. 조금만 건드려도 통증이 심각한가 보다. 서로 연결돼 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강 교수는 ‘침묵의 카르텔’이라 이름 짓고 100% 합의 가능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문화에도 일정한 역할이 있다. 잡지 역시 신문이라는 기류에 편승하고 말았는데, 우리 문화는 내부고발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 조직 내 구성원은 모두 ‘마피아’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강 교수는 자신을 빗대어. 옳은 말을 하는 누군가를 죽이진 못하니.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고 자신을 비판하는 몇몇 필자들을 에둘러 지켜본다. 이들은 샤덴프로이데를 작동해야 자신이 양심적인 사람으로 복원 가능하다. 요상한 심리다.

    고인 물은 200% 썩는다. 탄압 후 민주화 세대는 탄압이 사라지면서 싸워야 할 대상을 잃었고 이제는 평화로운 공간에서 투쟁해야 하는 문제가 남게 됐다. ’누구나 인지하듯 이들은 수구 기득이 됐다. 이대로가 좋다는 것. 당연히 분노할 이유가 없다.

    강조하는바, 보다 개인적인 작게 하는 분노가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게 주장하는 핵심이다. 국민들에게는 기만적인 희망보다 정직한 절망이 더 낫다. “언어는 상스러운 세상을 반영해야 한다.” 기자와 생각이 너무 같아서 오랜만에 기분이 나아졌다. 사실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겠구나 싶은 마음도 든다

  • “제대로 된 리더가 되고 싶으신가요?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대로 된 리더가 되고 싶으신가요?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징기즈칸, 영국의 엘리베스 여왕, 미국이 말하는 강자의 조건”

    ‘강자의 조건’에서는 리더십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한국 독자들에게 심어주네요. 통솔, 지침, 장악, 통제, 나섬, 인정, 힘, 파워, 부드러움, 승리, 선점 등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을지 모르는 현재의 한국인들이 책을 통해 ‘진영논리’와 누구나가 고민하는 ’이데올로기적 사고’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한국에 그려진 기울어진 운동장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므로, 누구나 책의 내용을 십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약간의 용기를 가지고 적용만 할 수 있다면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와 대처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차를 살펴보면, 로마의 시민권, 몽고의 징기즈칸, 스페인을 굴복시킨 하찮았던 영국, 가장 작은 나라 네덜란드 그리고 현재의 여신상이 상징하는 자유의 나라 미국의 세기의 명장 한니발이 온갖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음에도 로마를 굴복시키지 못했던 이유, 100만 수준의 몽골인이 유럽에 걸쳐 전 세계의 다리를 놓아주게 된 이야기, 아프리카를 거쳐 전 세계를 호령하던 무적함대 스페인을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뛰어난 리더십으로 영국 해적 몇 척 가지고 게으르기로 유명한 영국인들이 제압했던 스토리, 주식회사의 시초인 동인도회사와 금융을 지배했던 유대인과 여러 종교와 인종의 결합이었던 우리 경상도만치 작은 나라 네덜란드, 그리고 독립전쟁 이후 흑인들의 살 떨리는 피의 투쟁이 만들어낸 마틴 루터킹의 자유의 호소를 반영한 헌장으로 집약된 ‘자유’와 ’기회’의 나라인 현재의 미국. 이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의 조건에 대해 저자는 마지막에 이같이 말을 남기네요. 2500년의 역사는 말하고 있다. 강대국을 만든 리더십의 실체는 힘이 아니다.관용과 개방을 통한 포용이다.

    처음에 ‘재미있다’에서 ‘역사는 반복일까…?“싶던 장은 미국 편으로 넘어가면서, 선대의 ‘선혈들이 튀어 써진’강대국 미국의 현재가 서술되면서 꽤 힘들고 고통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곧 지금의 미국인들을 이해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될 듯싶습니다. ‘공감’이란 게 참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뇌에 각인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 듯이요.

    다시 책의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강자’, ‘리더십’이란 일반인들이 생각했던 바와 맥이 거의 통합니다. 정리하자면 강자는 누군가를 다스리고 통제하는 누군가가 아니다.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 강함에는 항상 마지막이 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항상 새로운 강자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요?. 강자의 조건으로 저자가 집약해 꽂고 있는 ‘관용’이란 개념은, 항상 내일이라는 시간에 새로운 강자를 눈앞에 내놓아 불안함과 긴장감에 조여져 있을 수밖에 없는 경쟁의 굴레에 뛰고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큰 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프레임을 바꿔보면, 지난 시간 매 순간 어렵사리 결론지었던 ‘감사’와 ‘사랑’이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현재의 세상을 만들어 준 조상과 선배 그리고 어른들에 대해 감사와 조의, 경의를 표하면서, 이제 세상의 리더로서 그 누군가는 ’관용’이라는 강자의 조건은 타인 혹은 사회가 정해놓은 선들을 다소 부담없이 넘어도 되겠다는 강력한 공감의 힘을 이 책은 불어넣어 줍니다.

    물론 적절한 대안이나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과 첨예한 이해관계 등의 넘어야 할 산들이 많지만 말이죠. 적어도 목표를 세웠다면 이 책을 통해 ;나아갈 좀 더 확실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 인생의 주인이고, 리더입니다. 모두가 현 상황이 녹록지 않고, 매일 고민이고, 뇌가 부담스럽고, 혈관 역시 어떻게 되고 있나 걱정스러운 마음뿐 일 것입니다. 그래도 부딪치는 상황과 만나는 벽들을 대적하고 피가 나더라도 튀는 걸 염려하지 않으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과정 자체로 관계 맺을 수 있으며, 이것이 강해지는 재차 과정이라는 매일의 중첩은 쌓여가는 인생의 경험과 시간 속에서 누적돼 가는 미래의 더 나아질 자기 인생의 초상화가 조금 더 명확하게 그려질 수 있지 않을까요? ​

    한번 적용해 볼까요?  일단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임을 잊지 마시기를. ​입사 지원을 앞두고 있나요?  회사 사람들은 내 상대나 대적이 아닙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력서나 자소서는 자신이 함께 그 회사라는 함선에 올라탈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표현해서 제시하는 충실하게 쓰여야하는 자신에 대한 설명서며 계획서이자 전략서입니다. 혹 인맥과 관련해 고민인가요? 내 인생에 누굴 끌어들일까?, 누구를 챙기고 말고, 혼자 이런 헤괴망측시런 고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자의 조건이 ‘관용’이라면, 주체는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하고, 내 많은 이들을 인생이라는 함선에 초대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사실이 참 기쁘고 즐겁습니다. 진정 강자가 되고 싶다면 말입니다. 책에 따르면요. 인류를 끌어 온 강자의 역사가 증명한 내용 그대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