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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기자대회 後] “구데기 무서워서 장 안 담그다가”

    [세계기자대회 後] “구데기 무서워서 장 안 담그다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연예인 송중기가 JTBC 방송에 나와 방송 도중 ‘돈벌이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가상화폐 투자사이트를 공개하는 포스팅이 이슈가 됐다. 동아일보에서 한국은행에서 내린 방송을 받아 적어, 해당 언론사 기자가 투자했고 수익이 날 수밖에 없는 식의 교묘히 정보를 흘리는 방식의 뉴스 기사였다. 본 기자 역시 워낙 호기심이 많은 터라 실제로 웹사이트에 등록하고 전화를 걸어봤다.

    카드사 연결이 되지 않았고, 동남아 콜센터 여직원은 계좌이체만 강조했다. ‘이상하다 싶어’ 판단을 유보했는데, 다음 날인가 타 기사에 AI 영상을 이용한 사기 피싱이었다는 것. 그 후 해당 해외 콜센터 직원과 여러차례 통화를 나눠야 했다. 결국 현금을 빼내려는 AI기술을 이용한 사기였던 것.

    모두가 공감하는바 우리나라에 피싱 등의 사기 그리고 정치 여론몰이용 가짜뉴스가 판을 친 것이 현실이기에 AI저널리즘 도입 과제에서 모두가 신중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일보 패널이 말했듯 인간이 우선이고 민주주의 가치 보존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 도입 과정에서 안전은 당연한 선행조건이다.

    그렇지만 AI 저널리즘은 피해 갈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술 진보다. 칠레 패널이 말했듯 인간이 만든 기술은 당장 위협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AI는 결국 진보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인간이 창조한 대상이 인간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실제 아직 AI는 언론환경에서 기자들의 업무를 돕는 툴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컨퍼런스에서 AI 저널리즘은 외국 패널들이 주로 말해주고 있었다. 태국에서는 나라에서 AI 앵커를 기술적으로 보조하고, 언론사 간 새로운 문제에 대한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 벨기에는 AI가 자칫 사회적 편견을 일으켜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을지, 남성 위주의 데이터 입력으로 인해 사회가 분열될지 우려하는 모습이 여실히 보였다.

    기자들의 일자리 걱정과 함께 비판적인 사고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칠레에서는 언론사가 AI 도입과정에서 힘겨움을 겪었다고 인정하며 일단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 한번 멈춰 숨을 고르고 있다. 자체 제작이라는 목표는 당연히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마냥 생산되는 영혼 없는 기사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창의성에 대해 언급했다.

    강조한 것은 ‘어떻게 질문하느냐?’, 이 부분이 청취자의 정곡을 찔렀다. 잊고 있었다. 질문은 인간만이 가능한 창의성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기술을 제대로 사용해 보기도 전에 가이드라인에 없는 인력 ‘몰빵’ 중이다. 그것도 이미 글로벌 기준이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세월호의 ‘기레기’ 이태원 사태를 겪으면서 언론인들의 의식과 사명 수준에 관해 확인한 바 있다. 더구나 코로나를 지나며 남은 건 오직 ‘안전’ 지금도 백신 피해자가 1만 명 넘게 나오고 있지만 어디 제대로 보도하는 곳이 있을까?

    한국일보 패널은 ‘공포’라는 단어를 썼다. 아마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무의식적인 배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전’을 강조하지만 이미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소’는 상당수 도망갔다. 죄 없는 아이들이 죽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축복이라 할 수 있는 기술 진보를 코 앞에 두고도, 또다시 ‘안전’ 타령이다.

    똑같은 사람이 사는 사회다. 지나치게 세분화시킨 가이드라인은 전혀 ‘안전’과 무관하다. 그야말로 무의미한 ‘통제’로 실체 없는 ‘공포’만 반복될 뿐이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가이드라인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이미 모두가 따르고 있는 트렌드가 있다. 또, 우리나라 상황에서 포털이란 게 어차피 재차 검열하지 않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고 있다가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또 그는 저널리즘에 대해 “우리 언론사는 지향점이 다르다”, “공용 안 될 것 같으니, 자체적으로 만들 것을 권유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역시 마음에 상당히 걸렸다. 현실 같기도 했고, 세계기자대회에서 우리 ‘저널리즘’의 수준을 드러내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분열’된 사회와 이것이 투영된 그의 언론 세계관을 무의식 중 나타낸 것 아닐까?. 그것도 ‘함께’해보자고 모인 50개국 기자들 앞에서. 대기업 중심, 실상 ‘갑’인 포털과 여기서 매겨지는 광고단가, 실제 AI 필요 없이 사람에게 검열돼 나오는 기사들.

    국내 언론 바닥을 꽤 오랜 기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저널리즘에 대해 할 말이 상당히 많지만, 주제가 AI인 만큼 논점 일탈은 그만. 하지만 이는 ‘본질’이라 생각한다. 아직 자체 언론사에 해당 서비스 기술을 사용할 처지가 아닌 터라 여기까지 정리하기로 한다.

    22일 기자협회가 주관한 세계기자대회 참석자들
  • 총수 신년인사회를 지나치며…”우리 신경쓰지 마요”

    기업 총수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불필요한 ‘과잉’

    정작 필요한 것, 생활에 관계돼 있는 이웃들에 ‘시선’

    2024년 재계 신년인사회가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 지하에서 2일 오전 열렸다. 기업 총수들이 등장하는 자리에 대한민국 주요 경제계에 종사하는 이들, 그리고 매체 기자들, 홍보라인 관계자들이 모두 모였다. 직업이 기자인지라, 나도 자리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사전등록을 하지 못한 관계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대한상의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기자 권한은 대통령실 쪽에서 관할한다고 해서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전일 상의 홈페이지에 등록을 하려했으나 공지가 사라졌기에 나름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취재가 허용되지 얺았다.

    섭섭함을 등에 묻힌 채 여의도 한강 나룻터에 가 라면 하나로 허기를 달랬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한 아주머니께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고 계시는 장면을 봤다. 아마도 믿을 수 있는 게 인터넷에 올려진 기사인 듯 싶다. 기자라,.. 카페나 사람 많은 곳에서 전화취재를 하게 되면, 이를 듣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분위기를 자주 느끼곤 한다. 기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꺼리고, 눈치를 볼까. ’기레기~’ 나도 공감한다. 사실을 보도한 기자나 기사들은 많지만, 필요한 이야기는 별로 보질 못했다. (내가 상대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기자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인 줄 알면서, 사회에서는 기자들에게 꽤나 대우를 해주는 가보다. 본인들의 어려운 생활이나 아픔들을 지적해 주는 기사들, 나 별로 못 봤다. 집단화로 묶어 보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대우를 받는다. 

    이날 기관에 모인 기업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회장이라고 하면, 꽤나 사람들이 존중해 주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이 본인(아니 우리로 좁히자)에게 무슨 도움을 줬나? 그들은 우리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명확한 장사꾼일 뿐이다. 쉽게 말해, 그들의 급여는 우리가 챙겨주는 셈이다. 대우는 그들이 우리에게 해 줄 것이지. 우리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나라에 세금이 쌓이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월급이 없 듯. 기업 총수라는 자리 역시 우리의 지갑이 열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고마움을 표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바로 우리다. 당연한 소리 아닌가?. (이쯤에서 나 역시 과거 기자생활하면서 기업총수들 보고 마냥 ‘우와~’한 적이 많았다. 희소성?. 아니면 뉴스에서 봐서? 글쎄다. 왜 그랬을까 싶다.) 그냥 똑같다. 다를 게 전혀 없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들?

    2024년, 용의 해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등 안 좋은 통계들이 난무하다. 세계 어느 민족 못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좋은 자원과 에너지들이 곳곳에 필요 이상의 과몰입으로, 감정노동으로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 못 하든 행동을 초래하는 가장 큰 동기는 생각, 그리고 이것에 영향을 받아 생기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를 자극하는 것은 당연히 신경 쪽이다. 그러니 쓸모없는 곳에 우리의 소중한 신경을 분산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돈이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똑똑하다고, 가치 있는 무엇이 모두 사회 통념이 인정하는 바 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것들을 가진 누군가를 존중하거나, 우리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줄 필요는 없다.

    모두 우리가 번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임을,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정도로 ‘그냥 그렇다’ 곧, 나와 크게 관계없는 이들은 스쳐 지나가자. 그보다 진짜 나의 신경과 호감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바로 접점이다. 가족, 친구, 지인, 직장 동료,, 동네 소상공인들. 알바나 직원, 택배나 음식을 배송해 주는 이들.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쓸모없이 분산돼 있는 신경들을 돌려 전해주면 어떨까? 혜택은 당신에게 돌아온다. 가는말이 고우면 반드시 오는 말도 곱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 더 건강해지고, 사회도 좀더 밝아지고 살만 해 지지 않을까?

    2일 여의도 한강 나룻터에서 노닐던 한 까치
  • 코로나 사태가 증명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언젠가 반복될 감염병, 그 땐 우리모두가 피해자”

    코로나 사태가 증명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언젠가 반복될 감염병, 그 땐 우리모두가 피해자”

    코로나 사태를 두고 시민단체, 국회 공무원, 정부 관계자들 모두 등 돌려

    엔데믹 놓고 환상볼 때가 아니라. “우리 문제임을 왜 모를까?” 

    3000명 이상 사상자. 감염병은 언젠가 ‘반복’….대책은 ‘무상의료’ 뿐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가족들의 사연을 인터뷰 하는 기사를 얼마전 냈다. 강은미 보좌관이 같이 싸워줬다고 해서. 의원실에 방문해서 담당 보좌관과 추가 인터뷰를 나눴다. 기사를 올렸고 예의 상 ‘고맙다’는 인사를 카톡에 보냈다.

    어제 오후에 갑자기 답장이 왔다. 기사를 확인했는지 녹취를 허락 안 했고, 취재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전일 기사작성 전 분명 내용 상 ‘문제가 될게 없다”고 들었다. 애초 내 매체에는 사실과 다르지 않다면 기사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취재원인 당사자가 싫다니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자기 말만 반복해서 쓸만한 말도 없었고 그 마저도 보도하지 말라니….한마디로 힘빠지는 상황이었다.

    국가가 부랴부랴 검증도 안한 채 뿌린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3000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냈음에도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는 연락을 받지도 않았고, 국회의원실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이들은 자기 말이 외부로 나가기를 꺼려. 몸을 사린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사람은 무엇떄문에 국민세금 받고 거기에 앉아 있을까 싶다. 이태원 유가족 취재 당시 시민단체 관계자가 자기 감정만 돌보고;협조도 안하려는 심산이 그대로 보였고,인터뷰를 앞으론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시민단체는 아예 코로나 유가족 측은 저버렸다.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는 건 공감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가족들을 제외한 이 사회의 관계자들은 모두 상당히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강은미 의원실 보좌관은 대화 당시 우주의 일을 다 알수 없으니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으니까. 이런 소리를 떠들더니 한다는 말이 ‘엔데믹? 웃기지마라. 과학으로 아무것도 증명 못한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 코로나 같은 유행병이 엔데믹? 약을 투여할때는 과학, 보상할 떄는 ‘검증 못해’ 이제 슬슬 발뺄 수 있을 때가 되니 다시 과학에 기대 ‘엔데믹’, 아주 과학이론 가지고 세상을 멋대로 재단한다.

    죽어나가는 건 국민들. 그리고 말이다. 감염병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망쳤고, 끝나지 않는 한 바이러스는 어디선가 다시 진화한다.(난 모든 바이러스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모든 악의 근원이 인간이 듯, 굳이 양자를 비교하진 않는다. 비교당하는 것 기분 나쁠테니까. 사람이니까) 국회에서 이번 회기에 관련 내용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다면, 재차 발생한 대혼란에 한국 국민들만 피해 볼;것은 필연적인 일 같다.

    물론 당사자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미리 대비하고 나서일테지만.’역지사지’;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상황을 겪어봐야 안다. 모두 잘 되려면 이 순환구조가 제격인데…잘 안되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본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온다’는 내용 중 마지막 수간호사가 우울증에 걸려 보호자들에게 쫓겨날 처지에 처한 한 간호사를 대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우울증에 걸린 간호사가 일을 못한다니?, 당신들 자녀가 사회 나가서 똑 같은 일 겪으면 어쩌겠습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이거구나’싶은 쾌감이 올랐다. 왜 자기나 가족들에게는 다른 렌즈를 끼고, 남에게는 칼을 들이댈까?’

    ‘역지사지’ 그렇게 어려운가? 습관이 무섭다고 돈이 채워주는 욕심에 길들여지면 이 당연한 것이 잘 안되나보다. 코로나 백신 문제, 거리에 나앉은 피해자들은 나와는 관계없는 이들 같을까? 아니다. 우리들의 모습이다. 사회제도 아래 보장받지 못해 노인이 되고, 충분히 우리 중 누군가도 거리에 주저 나앉을 수 있다는 걸. 영국 등 유럽에서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그들은 무상의료시스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궁극적인 국가책임제 도입이 해답일지도 모른다. 꿈이라도 꿔볼란다. 좋은 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들. 책상앞에서 모든 걸 처리하고, 코 앞 현장도 나가보지 않는 국민들이 주는 세금으로 밥 먹는 그들. 그리고 국가 기관의 각 관계자들. 이들의 몸에 베인 ‘무사안일’ 주의는 우리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꼭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 “인류학의 시각에서 나은 ‘눈’이 필요한 네이버”

    “인류학의 시각에서 나은 ‘눈’이 필요한 네이버”

    올바른 시각화가 올바른 정보와 공감력 제공

    분당에 렌즈를 맞추러 안경점에 왔다가, 마침 근처 네이버가 있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빌려타고, 이곳 네이버 본사에 와 있다. 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에 대해 물어보려던 차, 마침 세종에 데이터센터에 관계자들이 모두 가 있어, 혼자 카페 내 왠 로봇 옆 이렇게 오피니언 란을 채우고 있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눈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관심이 아주 많다. 뇌에 보내는 약 50% 정보는 모두 시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가 코의 후각이 생명이 듯, 사람은 ‘눈’의 동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이 피로하면 뇌가 피로하고, 몸까지 이것이 전달되기 때문에, 보통 피곤하면 눈을 감는다. 사람들은 무엇, 무엇이 ‘보인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냄새도, 과거도, 미래도, 소리까지. 대체적으로 정보라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시각을 통헤 전달된 소재가 대부분이다. 신기하게도 나를 가만 관찰해 보니, 일상에서 일처리를 할 때 말이다. 눈이 어떤 일을 처리하면, 그 다음의 단계로 시선이 가 있다. 뇌가 정보를 보내면 시각이 이를 확인하는 모양이다. 렌즈를 끼면, 다음에 헤드드라이기를 생각하고, 그 곳에 눈이 간 뒤, 드라이를 하고 있자면, 어느 덧 내 시선은 빗과 머리 오일을 가리키고 있다. 

    양자물리학을 다루고 있는 책에서는 시각화를 강조한다. 보통 의식을 주는 눈으로 보는 대상에 의미를 주면, 양자가 진동한다고 한다. 뇌에서 처리하는 정보는 모두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며, 사실 이것이 개인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절반 이상이 바로 ‘시각’이고 말이다. 책에서 이 시각화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자신의 신체를 시각화, 과거 척추근처 근육 등을 재차 반복 그리면서, 인체를 재생, 창조해 냈다고 하니,, (아마 사실일 듯), 책에 대해 소개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지만, 시각은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하고, 평소 무엇을 볼 것인가에 우리는 항상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인류학을 다룬 ‘알고있다는 착각’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가 속한 분야. 특히 전문직인 경우, 정보의 대부분을 흡수할 수 밖에 없는 종사하는 그 곳에서, 그 범주를 벗어나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기가 보인 세계가 준 정보가, 눈이 받아들이 것이 모든 세계라고 착각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인 것 같은데, 깊이 알진 못하지만, 정말이지, 거의 진리에 가깝다.취재까지 아니어도, 내가 최근에 본 국회와 기업에 종사하는 CEO, 금융계 그리고 교육계까지 자신이 전문가인 것은 맞겠지만, 다른 분야를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울안 개구리’일까. 자신이 가둬놓은 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것 같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쓰고도, 네이버의 것이라던 네이버 최수연 대표의 국감 발언은. 이를 여실히 방증한다. 왜, 네이버를 만들어주고 형성하고 있는, 작은 협력업체, 스타트업, 소상공인들의 입장은 전혀 보지 못하는 걸까?.자신이 속한 네이버란 세계에 푹 빠져, 바깥을 보지 못하고, 힘들게 살지 못해서 일까. 스스로 일궈낸 사람들의 땀과 피가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정보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어서 일지도.

    추가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오너가 아닌 이상, 어차피 자신도 이직을 하거나 잘리거나, 은퇴를 할 것이고, 나와선 결국 사업을 하던간에 자영업자가 될 진데, 만약,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자신은 지금의 자신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설마, 지금 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모르고 있진 않겠지만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 [국감장에서] 매년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허풍 ‘으름짱’

    [국감장에서] 매년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허풍 ‘으름짱’

    김한규 의원, 불렀으면, 법앞에 평등?…위증조차 ‘방치’

    지난 16일 정무위 국정감사.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닟익은 얼굴, 여러차례 그는 이미 국회 단골손님. 그의 알면서도 손놓는 방치 경영으로 이미 수많은 건설 근로자들이 목숨을 놓았다. 그를 불러세운 깁환규 의원 역시 이 사실을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 멀쩡하게 서 있던 아파트 벽이 허물어져, 수많은 사람이 죽고, 허물어 진 벽 옆에서 고문과 같은 상황을 견디다 못해 삶을 포기했고, 그런 일은 얼마나 지나지도 않아 계속적으로 반복됐으며. 인간의 어리석음은 고쳐지지 않는지 이 회장이라는 결정권자는 여전히 이날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무슨 대본을 읽듯 앞뒤도 맞지 않는 거짓들이 술술 그의 입에서 흘렀다. 난 이를 굳이 짚고 싶지 않다. 다른 것보다 난 질의자인 국회의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굳이 워딩, 녹취록을 찾아 되뇌일 필요는 없겠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증인으로 상대를 불렀고, 국민 앞 심판대를 강조하는 것이 맞을진대 그래서 하는 ‘으름장’위증이면, 처벌을 받는 게 맞다. 

    그런 뉘앙스로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같다. 국회의원의 으름장. 과연. 정 회장은 보란듯이 눈하나 깜짝않고 준비했던 머리속 스크립트를 읽어내렸다.

    그럴거면 매년 굳이 법 심판대는 고사하고, 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있는 힘도 없으면서 무슨 국회이고 법이란 말이냐? 

    차라리 모두가 아는거, 혼자 말하고 말지. ‘으름장’은 왠?. 상대는 속으로 웃었거나, 아예 듣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다. 국회가 법을 놓고, 사람을 절차따지면서 작은 규정하나에도 까다롭다. 심지어 기자일일방문조차 철저하나 역시 이를 존중한다. 절차는 당연히 중요하다. 어디서나 말이다.근데, 뭐냐? 증인이라고 국민 들어먹거리면서 말하나 생각대로 꺼내지 못해, 거짓말이 당연한것. 국정감사는 무슨.. 증인이 말하는 위증? 방송 백날 켜봤자 재벌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

    국감 회의장 외부에서 국회 TV를 보던 난, 속으로 한숨이 ‘푸욱~’나왔다. 과거에 했던 고루한 생각이 머리 속을 지폈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돈봉투를 받았다고 양 당간 혈전이 있었는데, 방법은 간단하다. 돈봉투? 몇 백이 중요하겠냐?. 국회의원 월급명세서를 정확히 공개하고 부차적 수입도 조사해야 한다.

    공무원이면. 국민의 세금을 먹고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그 정도 하고,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해야할 것 아닌가?. 수 많은 국민에게 죽음이라는 트라우마 꺼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는. 기업CEO룰 국회라는 법과 규율이 있는 곳에 세웠으면, 적어도 거짓말은, 국민 보고 비웃는 듯한 느낌 정도는 해소해 줘야 하지 않나? 국민들이 표를 던져 뽑힌 대표, 국회의원 아닌가? 월급과 각종 특혜는 왜 만들어 놓고, 자기 논에 물대기; 자기 논에 쌀만 자라던 장떙이란 듯. 난 아직도 걱정되는 게…. 이 모든게 쇼는 아닐까 하는 우려다. 자본주의와 법치주의, 자유 대한민국에 모두가 평등한 이 세상에. 국회의원이라면, 적어도 세금으로 밥을 먹고 있으면 모두가 보는 방송에다 ‘우쒸~’하는 으름장 쇼는 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