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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데기 무서워서 장 안 담그다가”

    “구데기 무서워서 장 안 담그다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연예인 송중기가 JTBC 방송에 나와 방송 도중 ‘돈벌이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가상화폐 투자사이트를 공개하는 포스팅이 이슈가 됐다. 동아일보에서 한국은행에서 내린 방송을 받아 적어, 해당 언론사 기자가 투자했고 수익이 날 수밖에 없는 식의 교묘히 정보를 흘리는 방식의 뉴스 기사였다. 본 기자 역시 워낙 호기심이 많은 터라 실제로 웹사이트에 등록하고 전화를 걸어봤다.

    카드사 연결이 되지 않았고, 동남아 콜센터 여직원은 계좌이체만 강조했다. ‘이상하다 싶어’ 판단을 유보했는데, 다음 날인가 타 기사에 AI 영상을 이용한 사기 피싱이었다는 것. 그 후 해당 해외 콜센터 직원과 여러차례 통화를 나눠야 했다. 결국 현금을 빼내려는 AI기술을 이용한 사기였던 것.

    모두가 공감하는바 우리나라에 피싱 등의 사기 그리고 정치 여론몰이용 가짜뉴스가 판을 친 것이 현실이기에 AI저널리즘 도입 과제에서 모두가 신중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일보 패널이 말했듯 인간이 우선이고 민주주의 가치 보존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 도입 과정에서 안전은 당연한 선행조건이다.

    그렇지만 AI 저널리즘은 피해 갈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술 진보다. 칠레 패널이 말했듯 인간이 만든 기술은 당장 위협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AI는 결국 진보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인간이 창조한 대상이 인간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실제 아직 AI는 언론환경에서 기자들의 업무를 돕는 툴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컨퍼런스에서 AI 저널리즘은 외국 패널들이 주로 말해주고 있었다. 태국에서는 나라에서 AI 앵커를 기술적으로 보조하고, 언론사 간 새로운 문제에 대한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 벨기에는 AI가 자칫 사회적 편견을 일으켜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을지, 남성 위주의 데이터 입력으로 인해 사회가 분열될지 우려하는 모습이 여실히 보였다.

    기자들의 일자리 걱정과 함께 비판적인 사고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칠레에서는 언론사가 AI 도입과정에서 힘겨움을 겪었다고 인정하며 일단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 한번 멈춰 숨을 고르고 있다. 자체 제작이라는 목표는 당연히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마냥 생산되는 영혼 없는 기사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창의성에 대해 언급했다.

    강조한 것은 ‘어떻게 질문하느냐?’, 이 부분이 청취자의 정곡을 찔렀다. 잊고 있었다. 질문은 인간만이 가능한 창의성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기술을 제대로 사용해 보기도 전에 가이드라인에 없는 인력 ‘몰빵’ 중이다. 그것도 이미 글로벌 기준이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세월호의 ‘기레기’ 이태원 사태를 겪으면서 언론인들의 의식과 사명 수준에 관해 확인한 바 있다. 더구나 코로나를 지나며 남은 건 오직 ‘안전’ 지금도 백신 피해자가 1만 명 넘게 나오고 있지만 어디 제대로 보도하는 곳이 있을까?

    한국일보 패널은 ‘공포’라는 단어를 썼다. 아마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무의식적인 배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전’을 강조하지만 이미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소’는 상당수 도망갔다. 죄 없는 아이들이 죽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축복이라 할 수 있는 기술 진보를 코 앞에 두고도, 또다시 ‘안전’ 타령이다.

    똑같은 사람이 사는 사회다. 지나치게 세분화시킨 가이드라인은 전혀 ‘안전’과 무관하다. 그야말로 무의미한 ‘통제’로 실체 없는 ‘공포’만 반복될 뿐이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가이드라인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이미 모두가 따르고 있는 트렌드가 있다. 또, 우리나라 상황에서 포털이란 게 어차피 재차 검열하지 않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고 있다가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또 그는 저널리즘에 대해 “우리 언론사는 지향점이 다르다”, “공용 안 될 것 같으니, 자체적으로 만들 것을 권유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역시 마음에 상당히 걸렸다. 현실 같기도 했고, 세계기자대회에서 우리 ‘저널리즘’의 수준을 드러내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분열’된 사회와 이것이 투영된 그의 언론 세계관을 무의식 중 나타낸 것 아닐까?. 그것도 ‘함께’해보자고 모인 50개국 기자들 앞에서. 대기업 중심, 실상 ‘갑’인 포털과 여기서 매겨지는 광고단가, 실제 AI 필요 없이 사람에게 검열돼 나오는 기사들.

    국내 언론 바닥을 꽤 오랜 기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저널리즘에 대해 할 말이 상당히 많지만, 주제가 AI인 만큼 논점 일탈은 그만. 하지만 이는 ‘본질’이라 생각한다. 아직 자체 언론사에 해당 서비스 기술을 사용할 처지가 아닌 터라 여기까지 정리하기로 한다.

    22일 기자협회가 주관한 세계기자대회 참석자들
  • 총수 신년인사회를 지나치며…”우리 신경쓰지 마요”

    총수 신년인사회를 지나치며…”우리 신경쓰지 마요”

    기업 총수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불필요한 ‘과잉’

    정작 필요한 것, 생활에 관계돼 있는 이웃들에 ‘시선’

    2024년 재계 신년인사회가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 지하에서 2일 오전 열렸다. 기업 총수들이 등장하는 자리에 대한민국 주요 경제계에 종사하는 이들, 그리고 매체 기자들, 홍보라인 관계자들이 모두 모였다. 직업이 기자인지라, 나도 자리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사전등록을 하지 못한 관계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대한상의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기자 권한은 대통령실 쪽에서 관할한다고 해서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전일 상의 홈페이지에 등록을 하려했으나 공지가 사라졌기에 나름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취재가 허용되지 얺았다.

    섭섭함을 등에 묻힌 채 여의도 한강 나룻터에 가 라면 하나로 허기를 달랬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한 아주머니께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고 계시는 장면을 봤다. 아마도 믿을 수 있는 게 인터넷에 올려진 기사인 듯 싶다. 기자라,.. 카페나 사람 많은 곳에서 전화취재를 하게 되면, 이를 듣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분위기를 자주 느끼곤 한다. 기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꺼리고, 눈치를 볼까. ’기레기~’ 나도 공감한다. 사실을 보도한 기자나 기사들은 많지만, 필요한 이야기는 별로 보질 못했다. (내가 상대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기자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인 줄 알면서, 사회에서는 기자들에게 꽤나 대우를 해주는 가보다. 본인들의 어려운 생활이나 아픔들을 지적해 주는 기사들, 나 별로 못 봤다. 집단화로 묶어 보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대우를 받는다. 

    이날 기관에 모인 기업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회장이라고 하면, 꽤나 사람들이 존중해 주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이 본인(아니 우리로 좁히자)에게 무슨 도움을 줬나? 그들은 우리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명확한 장사꾼일 뿐이다. 쉽게 말해, 그들의 급여는 우리가 챙겨주는 셈이다. 대우는 그들이 우리에게 해 줄 것이지. 우리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나라에 세금이 쌓이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월급이 없 듯. 기업 총수라는 자리 역시 우리의 지갑이 열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고마움을 표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은 바로 우리다. 당연한 소리 아닌가?. (이쯤에서 나 역시 과거 기자생활하면서 기업총수들 보고 마냥 ‘우와~’한 적이 많았다. 희소성?. 아니면 뉴스에서 봐서? 글쎄다. 왜 그랬을까 싶다.) 그냥 똑같다. 다를 게 전혀 없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들?

    2024년, 용의 해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등 안 좋은 통계들이 난무하다. 세계 어느 민족 못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좋은 자원과 에너지들이 곳곳에 필요 이상의 과몰입으로, 감정노동으로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 못 하든 행동을 초래하는 가장 큰 동기는 생각, 그리고 이것에 영향을 받아 생기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를 자극하는 것은 당연히 신경 쪽이다. 그러니 쓸모없는 곳에 우리의 소중한 신경을 분산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돈이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똑똑하다고, 가치 있는 무엇이 모두 사회 통념이 인정하는 바 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것들을 가진 누군가를 존중하거나, 우리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줄 필요는 없다.

    모두 우리가 번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임을,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정도로 ‘그냥 그렇다’ 곧, 나와 크게 관계없는 이들은 스쳐 지나가자. 그보다 진짜 나의 신경과 호감과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바로 접점이다. 가족, 친구, 지인, 직장 동료,, 동네 소상공인들. 알바나 직원, 택배나 음식을 배송해 주는 이들.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쓸모없이 분산돼 있는 신경들을 돌려 전해주면 어떨까? 혜택은 당신에게 돌아온다. 가는말이 고우면 반드시 오는 말도 곱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 더 건강해지고, 사회도 좀더 밝아지고 살만 해 지지 않을까?

    2일 여의도 한강 나룻터에서 노닐던 한 까치